5 회
1-7. 악마의 속삭임
어느 날 사무실로 대학 동기인 오 택환이 저녁이나 먹자고 찾아왔다. 택환이는 미국에서 MBA 를
마치고 돌아와 S 증권사 영국지사로 파견 나갔다가 S 증권이 IMF 로 망하는 바람에 다른 증권사에서
투자상담사로 일하고 있었다. 잘 안 풀리고 있는 중이었다.
"야~~ 신 갑부 맛있는 거 사주라..."
택환이는 대학시절에도 항상 밝고 주위에 친구들이 모이는 성격이었다. 사무실 문을 들어서자 마자
농을 친다.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는 대학시절 이야기만 했다. 친구가 그리 잘 풀리지 않은 것을 알고 있어서
혹시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택환이는 그렇지 않았다. 택환이는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왔다.
"신 갑부... 나 왔어.." 그날도 택환이는 사무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야.. 택환아.. 넌 임마 작전도 안 하냐... 엉아.. 종목 하나 줘..."
당시 나는 낮에 사무실에서 HTS를 통한 매매를 했는데 처음에는 시간 때우기 매매라 해 놓고 막상
손실이 조금 나니 열이 약간 받은 상태에 택환이가 들어선 것이다.
"야.. 갑부가 무슨 현물 매매야... 너 정도면 선물이나 옵션을 해야지..."
"선물이나 옵션...?"
몇 년 전에 국내에 선물 옵션 파생시장이 도입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기관이나 외인들
중심으로 거래되고 있고 아주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몇몇 개인들만 매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 요즘 장이 조정 장세 인데 현물 매매로 수익이 나겠어... 이럴 때는 선물 매도 또는 콜 옵션
매도 플레이를 해야지..."
갑자기 택환이가 달라 보였다. 내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술술 해 댄다. 일단 당시 장이
조정 장세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분명 어느 종목은 급등을 하기도 하기에 종목만
잘 찾으면 수익을 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택환이는 조정 장세 에서 파생 상품 매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법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은 사무실에서 중국요리를 시켜먹었다. 그리고 12시 까지 택환이의 선물옵션매매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택환이는 MBA에서 공부와 D 증권 영국지점에서
파생매매에 대한 교육 및 실무를 통해 나름 국내에서는 파생분야의 전문가 같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택환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계속 맴 돌았다.
'옵션 양 매도 플레이 하면 5억으로 한 달에 4~5% 수익은 쉽게 나와.... 4~5% 면 2천만 원 이상의
수익이라는 건데...'
며칠 후 택환이는 아예 내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냥 자기네 증권사에 계좌만 열면 자기가
일단 2억으로 수익 내는 것을 보여주겠다 하였는데 나는 내 사무실에서 함께 매매하자고 했다.
친구를 못 믿기 보다는 일단 매매하는 것을 좀 배우고 싶었고 당시 증권사 투자상담사가 정직원도
아니고 결과만 좋다면 택환이와 내가 함께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택환이 이야기 대로 성능 좋은 컴퓨터와 큰 모니터도 구매하고 코스콤 전용선도 들여 놓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2억 계좌로 택환이는 매매를 시작했다. 택환이가 매매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니 옵션
호가창의 움직임은 어느 작전주 호가창 보다도 화려했다.
훅~~ 오르다가 훅~~ 밀리고...
하지만 택환이가 운전하는 계좌의 평가 손익은 상대적으로 크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택환이가
이야기한 양 매도 전략이 이런 것인가....
당시 종합주가 지수는 600 대 코스피 200으로는 70대 였다. 지금 코스피 200은 260 대이다. 하루 진폭은
한 2~3 포인트 정도이고... 그런데 2000년 중반 코스피 200이 70 대에서도 하루 진폭이 2~3 포인트 였다.
진폭을 백분율로 보면 지금 하루 진폭이 1% 정도라면 당시는 3%에 가까웠다. 그러니 지금보다 파생시장의
변동성이 2~3배인 그런 시장이었다. 따라서 옵션의 변동성이 지금보다 훨씬 컸지만 옵션 특성상 결국에는
만기에는 휴지가 되는 것이었다.
며칠을 지켜보니 그렇게 옵션 시장이 급변을 해도 그리 매매를 자주하지 않았다. 하루에 옵션 몇 개 정도
샀다 팔았다 하는 정도였다. 한 2주 매매하고 첫 만기일이 지나자 2억 계좌가 900만원이 불어났다. 4.5%
수익이었다. 뭐... 현물 하루 상한가에도 미치지 않는 수익이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니 큰 어려움 없이 계좌
금액을 지켜내면서 수익을 낸 것이다. 요거 괜찮네~~~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하루 하루를 보내던 그런 시절이었다. 혼자 있던 사무실에 친구 녀석이 함께 있으니
일단 말동무도 되고 매일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그에 따른 택환이 녀석의 운전 실력 구경하고 장이 끝나면
당시 유행하던 게임 (스타크래프트) 한두 판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기분 나면 조금 더 달리고...
두세 달을 그리 보내니 택환이가 운전하는 2억 계좌는 5천만 원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두세 달
옆에서 구경하고 택환이에게 선물 옵션 매매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듣다 보니 나 자신도 어느새
개인 선물옵션 매매자치고는 제법 풍월을 읊을 수준이 된 것 같았다.
1-8. 또 다른 악마세상을 보다
택환이가 운전하는 계좌를 5억으로 맞춰주고 한 달에 2천 수익 목표로 친구간이니 수익은 반띵 하기로
하였다. 한 달에 천만 원씩 가져가면 충분히 먹고 살만 했다. 그리고 나는 따로 5천만 원짜리 계좌를
열어 택환이가 만들어 준 선물 차트 시스템 신호에 따른 선물 네이키드 매매를 하였다. 원래 작전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현물 단타 매매를 즐겨 했던 나에게 선물매매는 딱 맞는 상품이었다. 당시에는
5천만 원 계좌라도 선물 5~6 계약 매매가 가능했다.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버니 맘은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맘이 횡~ 했다. 매일 매매하고 장 끝나면 즐기는
패턴도 슬슬 지겨워질 때가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택환이 녀석이 나에게 낡은 소설 책
한 권을 던져 주었다.
"한 번 읽어봐.. 재미있어~"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개장 전 몇 장 읽다가 매매해야지 했지만 나는 오전 장 이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지금은 정치인이자
탤런트 최명길의 남편인 김한길이 지은 그 소설은 정말이지 남자들로 하여금 한 번은 살아 보고 싶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특히 주인공이 카지노에서 블랙잭 바카라 등의 게임을 하는 장면들이 너무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흥미 진지 했다.
그런 나를 힐끔힐끔 쳐다 보면서 장을 지켜 보던 택환이 녀석이 말을 걸었다.
"신사장님 카지노 구경 한번 해 보시겠어요~~"
택환이 녀석은 고등학교 때 집에서 굴러 다니던 그 책을 보고서 엄청 흥분했었다고 했다. 카지노 부분도
그랬지만 사실적으로 그려진 섹스 장면에서는 어린 청춘으로서는 책을 보면서 손장난을 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뭐... 강원랜드 가자고... 야... 거기 사람 너무 많고 엉망이래..."
그 책을 일찍이 읽었던 택환이는 미국에서 MBA 공부 하러 가면서 미국 카지노 한번 가서 게임을 해
보는 것을 맘 먹었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택환이가 공부한 학교는 라스베가스 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 동부였고.. 그래서 라스베가스가 아닌 차로 6시간 운전해서 가는 아틀란틱 씨티 에서 방학 때 몇 번
게임을 해 보았다고 했다.
"어휴~~ 신사장님을 어떻게 강원랜드 같은 아사리 판에 모셔요..."
다음날 금요일 장을 마치고 우리는 마카오 직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타기 전부터 시작된
택환이의 카지노 게임 강의는 마카오 공항에 내릴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런데 정작 택환이도 마카오는
첨이란다. 하지만 전세계 카지노 게임 룰은 똑 같다고 했다.
마카오 공항에서 내린 우리는 택시를 잡아 탔다. 택환이가 택시기사에게 마카오에서 가장 큰 카지노로
가달라고 영어로 이야기 했다. 그런데 택시기사는 우리를 공항에서 가장 먼 카지노로 데리고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내린 곳은 당시 마카오에서 가장 큰 리스보아 호텔 카지노였고 우리는 제대로
찾아 온 것이었다.
나는 쉽게 카지노 블랙잭 게임에 빠져들었다. 우리 둘은 그 날밤 블랙잭 테이블 맨 끝자리 두 개를
차지하고 겜을 했다. 블랙잭에서 말구 자리에 위치한 사람의 중요성은 상당하다. 택환이가 말구를 맡고
나는 그 전 자리에 앉아 택환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 블랙잭 테이블을 운전했다. 홍콩 달러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오히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질러댔고 그 날밤 우리는 충분히 승리했다.그리고
마카오의 밤 문화도 실컷 즐겼다.
한 동안 주중에는 파생 매매를 하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마카오 나들이를 했다. 어느새 나는 악마의
게임에 푹~~ 빠져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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