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회
제 2 장 첫 걸 음
2-1. 파생귀 시험
이승을 떠나 저승에 오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고 내적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탐욕이라는 마음이 이곳 저승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탐욕이라는 마음이 사라지면 머리는 항상 맑고 모든 일에 불평불만이 사라진다. 물론 이승 세계에서도 이런 탐욕이라는 마음을 지워버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훌륭한 종교인들이 그들인데 그래서 우리 귀신들은 그들을 가장 힘들어 하고 두려워 한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나는 주당 60시간 54주의 자존감 회복 프로그램을 마친 후 파생귀 시험에 도전했다. 이승에서 파생으로 망하고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이 모두 파생귀 시험에 도전하지는 않는다. 그들 중 절반은 저승에 오면서 정말로 파생에 대한 미련을 정리하고 온 것이다. 절반 정도 시험에 응시하는데 생각보다 그들의 합격률은 높지 않다. 특히 이승에서 한 때 파생 분야에서 고수라고 통했던 사람들은 거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돈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한 이승에서의 파생 지식은 이곳에는 통하지 않는데 그들은 그런 지식을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파생으로 나의 삶을 등졌지만 실상 나 스스로 매매에 집착하지는 않은 경우이다. 그렇기에 이승에서의 파생매매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곳 파생귀 시험은 이승에서 파생매매 경험이나 전문적인 지식 정도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파생귀가 되어 시장 매매에 참여하여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파생귀 시험은 약간의 파생 시장과 매매에 대한 지식과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귀신들을 선발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다음 문제는 내가 응시한 2004년 가을 파생귀 시험 문제 12개 중 하나이다.
문제 9) 아래는 지난 4개월간의 선물 일봉이다. 2004년 9월 30일 선물지수 종가는 107.70 이다. 아래 일봉 차트를 보고 2004년 납회일인 12월 30일 선물 종가를 예측하고 예측한 근거를 논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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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에서 위 9번 문제 때문에 나는 상당히 힘들어 했다. 나머지 문제들은 쉽게 답을 적어 나갔지만 위와 같은 문제를 내가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주위에 나와 같이 응시한 다른 귀신들은 연신 펜을 돌려가며 답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시험 시간이 끝나고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서 응시한 귀신들은 모두 9번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느라 시험장이 웅성웅성 했다.
추세가 상방 추세라는 둥... 큰 악재 없다면 년 말 장세 효과로 크게 오를 것이라는 둥... 추세의 끝자락이므로 아래로 크게 밀릴 위치라는 둥...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생귀 시험은 두 번의 응시 기회가 있으니 다음 봄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었다.
3일 후 시험 결과 발표날 우리는 다시 시험을 봤던 시험장에 모였다. 현실 세계에서 여성이었던 파생귀장이 긴 머리를 나부끼며 연단에 올랐다.
"먼저 합격자 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잠시 후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8명의 합격자 중 나를 일곱 번째로 호명한 것이다. 70 여명이 응시해 8명을 선발하는 시험에 내가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험날 9번 문제를 가지고 큰 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던 몇 명의 친구들은 어느 누구도 호명되지 않은 것이었다.
"자... 합격한 귀신 분들은 다음주부터 신입 파생귀 교육이 실시 됩니다. 교육 장소와 일시는 합격자들에게 개별 통보 하도록 합니다."
"잠시만요~~"
누군가 큰 소리로 연단을 내려오려는 파생귀장을 불렀다. 그 친구는 9번 문제를 가지고 가장 자신감을 피력했지만 시험에서 낙방한 친구였다.
"제가 왜 불합격입니까...? 제 답안지는 완벽했습니다."
파생귀장은 그 친구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그 친구에게 이름을 물어 본다.
"이 준구 입니다. 생전에 외국계 증권사에서 12년 근무하였고 이후 투자자문사 운용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잠시 후 한 파생귀가 들고 있던 답안지에서 이 준구의 답안지를 찾아 파생귀장에게 건네 주었다. 파생귀장은 말 없이 이 준구의 답안지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말했다.
"훌륭한 답안이네요.. 특히 9번 답안은 최고네요... 연말에 선물지수가 120 부근이다.. 음... 좋아요.."
이 준구는 그런 파생귀장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 있게 내 뱉었다.
"일단 합격 시켜 주십시오. 만약 연말에 선물지수가 115~125 사이로 결정 나지 않는다면 어떠한 벌이라도 받겠습니다."
이 준구의 말에 몇 명이 동참하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때 파생귀장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했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이승에서 파생매매를 하다 잘못되어 이곳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섞어 빠진 정신상태 그대로 입니까..? 아니... 이제 귀신이 되었으니 앞으로 지수를 더 정확히 예측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년 말 선물지수는 아무도 모릅니다. 귀신도 모른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몇 분들은 아직도 자신이 그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요. 그것이 여러분을 이곳 귀신의 세계로 데려왔는데요.."
파생귀장의 말에 이 준구를 포함한 웅성대던 몇 명이 입을 다문 채 멍한 모습이 되었다. 그렇다 귀신도 모른다는 향후의 지수 예측으로 우리는 모두 망가졌던 사람들이다. 예측만 했다면 망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 예측을 철썩 같이 믿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걸면서 매매의 환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파생귀장은 말을 이었다.
"우리 파생귀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업 대상들이 이 준구씨 처럼 자신의 예측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작업하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어쩌면 이 준구씨도 그렇게 우리 파생귀들에게 작업 당했을 수 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 안 해 보셨나요..?"
그 이야기에 나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어쩌면 나에게도 이승에서 파생귀가 달라 붙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파생귀 하나가 택환이의 몸을 빌려 나를 작업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일단 파생귀 시험에 통과되었으니 이제 교육을 받고 이승 구경 실컷 하면서 작업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후 나는 한 달간의 파생귀 연수원에서 신입 파생귀 교육을 마치고 정식으로 파생귀가 되었다. 연수원을 나오는 날 신입 파생귀 8명에게는 각자의 사수 파생귀가 소개 되어졌다. 나의 사수는 영화배우 고 창석 닮은 어찌 보면 정겹고 어찌 보면 무시무시한 파생귀가 배정 되었다.
"어이.. 신입이... 나는 강 봉식 이라 하네... 파생귀 3년 차야.. 앞으로 2년은 좋던 싫던 나와 같이 활동 해야 하네... 그리고 2년 후면 당신도 지금의 나처럼 신입을 2년간 돌봐주어야 하고..."
"네.. 신입 파생귀 신 준섭입니다. 강 봉식 사수님 잘 부탁 드립니다."
"좋아 신 준섭... 내일 처음으로 이승 구경 시켜 줄 테니 오늘밤은 잠 푹 자두라고.."
그러나 내일이면 이승 구경을 한다는 생각에 그 날 밤 나는 쉽게 잠을 들 수가 없었다.
******************************************************************* 파생매매 자체는 참으로 쉽습니다. 계좌 열고 마우스만 클릭하면 됩니다. 하지만 꾸준하게 좋은결과를 이루는 것으로 참으로 어렵습니다. 파생매매로 대박의 꿈을 쫒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변두리강사의 자작소설 "파생귀" 파생매매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쓰여졌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