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
2-2. 잠복근무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서울특별시 장교동에 있는 H 대기업 자금부 이다. 일주일째 나는 한 사내의 뒤를 따라 다니고 있다.
이름 : 장 교식
나이 : 36
직업 : H 기업 자금부 과장
가족관계 : 부인과 1남 1녀
장 교식은 현재 옵션매매에 빠져 있다. 업무 틈틈이 HTS 를 쳐다보며 옵션을 매수하고 매도 한다. 문서 작성을 하다가도 Alt + Tap 키를 수시로 눌러대며 표정이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
이 사람이 내가 파생귀로서 처음 맡은 임무이다. 하지만 뭐 임무라고 할 것도 없다. 일주일 전 강 봉식 사수 파생귀와 이승으로 온 후 강 봉식은 내게 이 사람을 지켜 보라고 지시를 했을 뿐이다. 지켜 보기만 할 뿐 내가 뭐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다. 이틀에 한번 꼴로 강 봉식에게 장 교식의 생활을 보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장 교식을 지켜보는 것이 따분하기는 하나 저승세계의 따분함 보다는 훨씬 나았다.
장 교식을 지켜 본 처음 3일 간은 정말이지 따분했다. 하지만 차츰 장 교식을 알아가면서 그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켜 본지 4 일째 장 교식은 점심도 건너 뛴 채 은행 ATM 창구 순례를 이곳 저곳 하였다. L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고 자신의 통장에 입금 S 카드로 현금서비스 받고 또 자신의 통장에 입금... 그의 지갑 속에 있는 여섯 개의 카드가 모두 ATM 기계를 들어갔다 나온다. 카드를 ATM 기계에 넣고 '현금서비스 인출' 버튼을 누르고는 장 교식은 ATM 상단에 있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쳐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ATM 기계 순례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살짝 펼친 구겨진 은행 통장에는 잔고가 8자리이다. 하지만 앞에는 마이너스 표시가 되어있다.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 전에 사무실에 돌아 온 장 교식은 HTS를 다시 접속한다. 그리고는 다시 한숨을 쉰다. 뭔가 결심한 듯 바로 자세를 고쳐 잡고 핸드폰을 들고 비상구 계단 쪽으로 향했다.
"전문가님 저 회원 번호 8476 장 교식입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풋 매집 중인데요. 조금 불안해서요..."
장 교식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잔뜩 묻어 났다. 그와 반대로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전문가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쳐 났다.
"아.. 우리 회원님 이리 약한 모습 보이시나요. 이 바닥에서 이 파생박사 말 아니면 누구 말 듣겠습니까..? 이전에 말씀 드렸 듯이 이 파생박사가 국내 파생시장 특히 옵션 부분 최고수 입니다. 월회비 30만원 유료 회원 300명 이상이 저와 함께 하면서 옵션으로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고 저는 그것을 보람된 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2시 30분에 장마감 시황 방송 녹음 ARS 롤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장 교식은 이후 '네... 네...' 만 연발하다 전화를 끊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Alt + Tap 키를 누른 화면에는
'Put 112.5 평단 1.81 현재가 1.49 잔고 250
평가손익 -8,000,000원 수익률 -17.67%'
라고 표시되었다.
그 화면을 바라보는 장 교식의 눈빛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 이후 장 교식은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업무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연신 고개를 들어 벽면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다 2시 30분이 지나자 핸드폰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바지를 내리지도 않고 변기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열고 060 ARS 번호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리고 숨 죽인 채 7~8분 동안 핸드폰을 귀에 대고 화장실 멍하니 문을 바라 보았다. 30초에 1,000원 하는 ARS 미터기 소리가 이를 지켜보는 내 귀에는 들리는 듯 했다. 7분 잡으면 14,000 원... 물론 장 교식은 정회원이니 따로 ARS 요금을 내지 않겠지만 비회원 100명이 이 ARS를 듣는다면 140만원이다.
화장실에서 본연의 임무를 하지도 않고 애꿎은 변기 물을 내리고 자리에 돌아 온 장 교식은 자신의 뒷자리에 앉은 부장이 자리를 비운 것을 확인하고는 빠르게 화면을 HTS 로 전환했다. 그리고는 파생박사의 목소리를 떠 올리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좌측 선물 일봉 / 우측 코스피200 일봉]
'최근 선물 일봉과 코스피 200 일봉은 분명 상승 추세이기는 하지만 이전 갭은 꾸준히 메우면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일봉 차트를 보면 15 거래일 전에 나온 갭을 8거래일 전에 메웠고 5거래일 전에는 이전 보다 더 큰 갭이 발생되었습니다. 저 파생박사가 보는 견해는 오늘 월요일 그리고 앞으로 3일 후에 있을 만기일 까지 무조건 저 갭을 메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만기는 풋 옵션 대박으로 이어질 가능성 99.9999% 라고 강하게 말씀 드립니다.'
화장실에서 숨도 쉬지 않고 들었던 파생박사의 목소리가 일봉 차트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정 교식은 무엇에 끌린 듯 HTS를 통해 은행을 통한 입금을 신청하고는 눈을 질끈 감고 Put 112.5 를 1.50에 200개 더 추가 매수 하였다.
그러나 장이 끝났을 때 선물 지수는 거의 그날의 최고치로 마감되었고 장 교식의 계좌는 더 파랗게 변해 있었다.
'Put 112.5 평단 1.67 현재가 1.38 잔고 450
평가손익 -13,150,000원 수익률 -17.48%'
퇴근 길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장 교식의 어깨가 어제보다 더 쳐져 있었다.
그렇게 장 교식이 퇴근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귀신 어깨를 치는 것이 사람은 아니겠지. 사수 파생귀 강 봉식이었다.
"장 교식 왜 이리 힘이 없어 보이냐... 그리고 넌 왜 덩달아 죽상이야~~"
장 교식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내 얼굴에 나타나 있었나 보다. 나는 이내 얼굴 표정을 고치며 강 봉식에게 지난 이틀간의 장 교식 감시 내용을 보고 했다. 강 봉식은 20 여분간 계속된 내 보고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보고를 다 듣고는
"수고했어.. 그럼 이틀 후인 수요일에 보자고" 라고 이야기 하면서 사라지려고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강 봉식의 팔을 잡았다.
"형님... 이제 장 교식이 어찌 되는 건가요...? 이제 3일 후 목요일이 만기인데 저 사람 완전 깡통 차는 건가요... 저 사람 대기업 과장이라는 사람이 벌써 빚이 2억이 넘어가고 이번에 깡통 차면 아주 심각한 상황이 될 듯한데... 저 사람이야 그렇다 치고 애들하고 와이프는 불쌍해서 어떡해요...?"
강 봉식은 자신의 팔을 잡은 내 손을 슬며시 밀어내면서 이야기 했다.
"왜..? 신입이 네가 보기에 깡통 찰 것 같아서 그래.. 파생박사 전문가가 풋 대박이라며.. 대한민국 최고의 옵션 전문가 말인데 맞겠지 뭐...."
용기 내어 진지하게 물은 내 질문에 대해 영혼 없는 답변만 해주었다. 그런 대답에 실망한 내 얼굴을 한 눈에 알아 본 강봉식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 갔다.
"앞으로 지수 움직임은 귀신도 모른다고 했잖아... 귀신이 만기일 지수는 알 것 같아..? 그런데 말야.. 이곳 이승에는 앞으로의 지수 움직임은 물론 만기지수도 정확히 잡아낼 수 있다는 인간들이 수두룩 빽빽이야. 뭐 다들 자신들이 대한민국 최고수고 우주 최고수야... 정말 이런 인간들이 향후 지수 움직임을 맞추고 만기지수를 제대로 집어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아. 이 사람들이 그걸 알면 자신들이 포지션 잡아서 수익내면서 떵떵거리고 살지 왜 유료 회원 모집하고 전화기 붙잡고 혼자서 ARS 녹음하면서 살겠어."
강 봉식의 대답에 나는 장 교식이 더욱 걱정되었다. 파생박사의 말을 듣고 오늘 풋 112.5를 200개 금액으로 3천만 원치를 추가 매수한 그가 더 걱정되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강 봉식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이야기 했다.
"어이.. 신입이... 그리 걱정하지마... 장 교식이가 이번에 크게 망가지고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으면 당신 같은 신입보고 지켜보라고 했겠어. 저 친구는 아직 몇 년 남았어. 우리 귀신이 앞으로 지수의 움직임은 모르지만 사람들 명은 대충 알아 보거든... 저 친구 지금은 아니야.."
나는 그런 강 봉식의 말에 왠지 뒤통수를 한대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3일 후 2004년 10월 만기일 장 마감이 되자마자 장 교식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책상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오며 두 손을 치켜들고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질러대며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HTS 화면은 다음과 같았다.
'Put 112.5 평단 1.67 현재가 4.47 잔고 450
평가손익 +125,900,000원 수익률 +167.31%'
그날 만기 코스피 200 만기지수는 108.03 이었고 그의 112.5 풋은 4.47에 결제가 되었으며 7천 5백만 원을 들여 1.6배가 넘는 1억 2천 6백만 원 수익을 거둔 것이다.
그렇게 인파가 가득 찬 시내 한복판 거리를 소리를 질러대며 뛰어가는 장 교식의 뒤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나는 이승에서의 나의 모습을 떠 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한방을 날릴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인생의 마지막 그 한방은 내 얼굴을 강타한 가공할 만한 카운터 펀치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저 친구에게도 그 가공할만한 카운터 펀치가 제대로 그의 얼굴에 꽂힐 것이다.
그래 장 교식... 오늘은 실컷 즐겨라.
******************************************************************* 파생매매 자체는 참으로 쉽습니다. 계좌 열고 마우스만 클릭하면 됩니다. 하지만 꾸준하게 좋은결과를 이루는 것으로 참으로 어렵습니다. 파생매매로 대박의 꿈을 쫒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변두리강사의 자작소설 "파생귀" 파생매매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쓰여졌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