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파생귀

파생귀 11회




11

 

2-4. 파생지옥

 

오 정희 아파트에서 3일 째이다.  장은 오전 9시에 시작하지만 오 정희는 10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하는 일이 새벽에 퇴근하는 형태라 개장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어제는 일요일이라 새벽 1시 경 집에 돌아와 바로 잠이 든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것 같다. 

 

나는 밤새 오 정희 잠든 얼굴을 지켜보았다.  170 cm에 가까운 큰 키에 어울리는 이국적인 마스크이지만 왠지 슬퍼 보였다.  사실 그저께 처음 오 정희 집에 오자마자 본의 아니게 오 정희의 알몸도 보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아직은 이승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초짜 파생귀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지난 토요일 샤워를 마치고 나온 오 정희는 알몸인 채로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정성스레 다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그 상태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현관문 키패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 정희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자기 집처럼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온 사내는 170 cm 에 못 미치는 키에 앞 이마가 훤하게 벗겨진 뚱뚱한 체격의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 오 정희의 스폰서라는 H 그룹 2세인 최 준혁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들거리는 앞 이마와 두세 겹 겹친 턱살 그리고 엄청난 뱃살 한눈에 보아도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서도 왠지 접근하기 쉽지 않은 눈매와 입술모양 그리고 강하게 풍겨 나오는 돈 냄새가 재벌 2세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오 정희는 그런 최 준혁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 숨에 달려나가 최 준혁의 양복 상의를 받아 들고 배시시 웃으며 그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마치 퇴근하고 온 남편을 맞는 새색시 모습이었다.  그들 주위를 시츄가 깡총깡총 뛰며 맴돌았다.

 

오 정희가 내 온 쥬스를 한 잔 들이키고 최 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쇼파에 자신의 벗은 옷을 대충 걸어두고는 팬티차림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벗은 그의 몸은 정말이지 역겨워 보였다.

 

샤워를 마치고 아예 팬티마저 벗고 나온 최 준혁은 채 마르지 않은 몸으로 튀어나온 뱃살 아래 보일 듯 말 듯한 물건을 달랑달랑 거리며 안방 침대에 가서 누웠다.  오 정희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웃음을 띠며 최 준혁 옆에 가서 누웠다.  

 

"오 마담...  거실에 가서 내 가방 좀 갖다 줘..  좋은 거 가져왔지.."

 

오 정희가 거실로 가서 그의 루이비통 손가방을 가져오자 최 준혁은 짜잔~ 하면서 가방에서 CD 케이스를 꺼냈다.  몇 장의 CD 에서 한 장을 고른 최 준혁은 손짓으로 침대 옆에 놓인 DVD 플레이어를 가리켰다.  오 정희는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DVD 플레이어를 작동했다.  이내 이승에서 나도 즐겨보던 익숙한 화면이 TV 화면에 나왔다. 

 

 


초기 화면이 지나가자 몇 초 지나지 않아 TV 화면은 벌거벗은 두 명의 남녀로 가득 찼다.

 

"아이고... 오늘 우리 선상님들 나오시네..  저 선상님들 따라서 오늘도 열심히 해 보자구~  오 마담~~"

 

이전에도 몇 번 이런 일이 있었는지 오 정희가 그리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애써 싫은 표정을 감추려는 것이 역력했다. 

 

결국 본의 아니게 나는 그날 저녁 TV 화면에 나오는 야동과 내 눈 앞에서 직접 펼쳐지는 야동을 동시 관람하였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지금 내 머리 속에는 그 두 개의 야동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은 최 준혁의 눈을 피해 오 정희가 지었던 표정과 그녀의 눈빛 뿐이다.  그 표정과 눈빛 속에는 최 준혁에 대한 증오와 경멸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개장한 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오 정희는 일어나자 마자 바로 컴퓨터를 켜지 않고 주섬주섬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야구 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고는 거실 탁자 위에 지난 이틀간 놓여 있던 최 준혁이 놓고 간 봉투를 그제서야 열어 보았다.  봉투 안에는 100 만원 짜리 수표가 꽤 들어 있었다.  세워보지도 않고 오 정희는 트레이닝 상의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시츄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20여 분 후 돌아 온 오 정희는 그제서야 컴퓨터를 켜고 증권 HTS 접속하였다. 그리고는 망설임도 없이 은행 연계 입금을 통해 2,000만원을 증권 계좌로 이체하였다.  이제 증권 계좌 잔액은 20,346,888 원이 되었다.  아마 지난 주 목요일 12월 만기에 깡통이 되었었나 보다.

 

그때서야 뭔가 생각난 듯 오 정희는 핸드백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 문자 확인을 하였다.


 

 

파생박사 방송을 접속하면서 오 정희는 정성스레 옵션 가격 마디를 옵션 1 분봉차트에 그려 넣었다.

 

 


[11시 현재 1분봉]

 

 

그려 놓고 보니 그럴싸해 보였다.  아니 그럴싸한 정도가 아니라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어 보였다.  11시 까지 흐름을 보면 콜 풋 모두 옵션 가격 마디에서 지지 또는 저항을 제대로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잠시 후 파생박사 방송 방에 접속이 되고 파생박사의 열띤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 이제 11시 구간 들어 갑니다.  개장한지 2시간 되었는데 옵션 가격 마디의 위대함이 느껴지시죠.  콜은 4.55에서 두 틱 모자란 지점에서 고점 만들고 밀리고 그때 풋은 1.25 에서 지지 받고 반등 들어갔죠.  .. 이 옵션 가격 마디 믿고 1.25에서 풋 매수 하신 우리 방 분들 이제 30 틱 수익으로 가고 있습니다.  100개 매수 하셨으면 3백만 원 수익 되고 있죠.  ~~ 저 파생박사 믿고 지금 개당 30틱 씩 수익 이신 분 1번 눌러 보세요"

 

순식간에 서른 개 이상의 1번이 채팅 창으로 올라왔다. 오 정희는 아~ 좀 일찍 일어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생박사의 목소리는 점점 톤이 올라갔다.

 

".. 이제는 풋이 1.55 마디를 돌파하느냐 입니다.  1.55 돌파 하면 일단 1.69 자리 노릴 수 있고요.  1.69 까지 가서 익절하면 개당 44 틱 수익입니다.  오늘 전강 후약 장으로 보이니 80% 이상 1.69 간다고 봐야죠.  옵션으로 수익 내기 정말 쉽죠잉~~  장 개장하자 마자 9 2분에 문자 서비스 신청하신 회원들에게 문자 다 쏘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첫날이라 9 30분에 방송에서 옵션 가격 마디 오픈 했습니다.  아직 문자 서비스 신청하지 않으신 분들은 바로 신청하세요.  메저들이 이용하는 옵션 가격 마디이니 무한정의 회원 분들에게 서비스를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까지 140 여명이 신청하셨는데 앞으로 60분들에게만 이 멋진 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오 정희는 그 말을 듣고 "어휴~ 토요일에 신청하고 오기를 잘 했네~" 라고 혼잣말을 했다.

 

잠시 후 30분 정도 지나자 풋은 정말이지 거짓말 처럼 1.69를 살짝 돌파하여 1.72 까지 찍어 버린다.  컴퓨터 스피커가 찢어질 정도로 파생 박사가 외친다.

 

"~~ ~~~ ~~~ ~~~~  올청~ 올청~~"

 

오 정희도 뒤늦게 평단 1.56에 따라 붙은 풋 120 개를 청산했다.  개당 13틱 수익 실현이익 1,560,000 원이 찍혔다. 파생박사가 다시 한번 외친다.

 

 

"~ 풋 올청하시고 수익 챙기신 분 1"

 

다시 서른 개 이상의 1번이 채팅창을 가득 메운다.  이번에는 오 정희도 1 번을 기분 좋게 눌렀다. 

 

[상승모드] 1

[수익창출] 1

[청담동며느리] 1

[타니] 1

 

오 정희의 필명은 '청담동며느리' 였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짠~ 했다.  비록 텐프로 룸쌀롱 마담으로 최 준혁 같은 재벌 2세의 스폰을 받아가면서 청담동에서 살고 있는 오 정희에게 '청담동며느리'라는 필명은 진정 그녀가 어떤 삶을 바라고 있는 지 느껴졌다.  나는 왠지 그녀가 안되 보여 나도 모르게 그녀의 오른쪽 어깨 위에 손을 대고 그녀가 잘 되기를 기원했다.  그러자 오 정희가 오른쪽 어깨를 들썩이더니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두세 번 긁었다.  그런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저승에서 교육 받은 바로는 이렇듯 우리가 터치했을 때 반응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순수하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30대 초반 나이에 술집 마담으로 일하고 스폰을 받아 생활하기에 겉만 번지르 하고 속은 닳고 닳은 그런 여자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공연히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어찌 보면 이 여자가 닳고 닳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닳고 닳은 인간들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 아닐까...

 

점심을 건너 뛰고 오 정희는 파생박사의 방송을 들으며 매매를 계속했다.  12시가 좀 지나자 파생박사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 회원 여러분 우리가 올청 한 풋이 다시 내려오죠.  일단 바로 아래 마디 1.55 까지 내려 옵니다.  ~ 그러면 우리는 다시 들어가는 겁니다.  오전 수익을 담보로 가볍게.. 그러면 다시 한번 1.69 까지 올라 옵니다.  ... 이렇게 옵션 가격 마디를 알면 옵션 뼈다귀까지 수익을 발라 먹을 수 있습니다."

 

오 정희는 다시 풋을 1.57 부터 분할 매수 하였다.  평단 1.54 130개가 매수 되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파생박사가 이야기 한데로 장은 흘러가지 않았다. 1.55 라인을 밀고 내려간 풋은 그 아래 마디인 1.39 를 향해 달려 갔다.

 



 

[그날의 5분봉]



오전 1,560,000원 수익이 이제 40여 만원 손실로 바뀌고 있었다. 

 

장이 엉뚱하게 흘러가자 파생박사는 계속 "~ 우리는 오전 수익을 담보로 들어 간 것이니 좀 버틸 수 있죠.." 라는 말만 반복했다.

 

오 정희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뭔가 마음을 결정한 듯 마우스에 집게 손가락을 대고 풋 옵션 호가창만 쳐다 보았다.  장 막판이 되어 평가 손익이 플러스로 돌아서자 오 정희는 미련 없이 전량 청산을 하였다.

 

"~~ 오늘 손실은 겨우 면했네.."

 

겨우 13만원 실현이익이 찍힌 화면을 보면서 오 정희가 중얼거렸다.

 

잠시 후 3시 넘어 장은 동시호가에 들어가고 결국 3 15분 풋은 1.46에 마감이 되었다.  파생박사가 다시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 오전에 풋 1.25에 매수 1.69에 올청 44틱 수익 그리고 오후에 한 아홉 틱 돌려주었죠.  자 이렇게 먹으면 약간은 시장에 되돌려 줘야지 파생귀신들에게 안 잡혀 갑니다."

 

이 자가 파생귀를 들먹인다.

 

".. 오늘 방송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파생박사의 옵션 가격 마디만 있다면 수익 내는 데 별 어려움 없겠죠.  .. 동의하시는 분들 1번 한번 때려 주세요~~"

 

다시 1 번이 채팅 창을 채우기 시작했다.  13만원의 수익이 좀 아쉬웠지만 청담동 며느리 오 정희도 1 번을 눌렀다.  나는 그런 그녀의 눈 속에서 또 다른 헛된 꿈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파생매매 자체는 참으로 쉽습니다.  계좌 열고 마우스만 클릭하면 됩니다.  하지만 꾸준하게

좋은결과를 이루는 것으로 참으로 어렵습니다.  파생매매로 대박의 꿈을 쫒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변두리강사의 자작소설 "파생귀" 파생매매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쓰여졌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소설-파생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생귀 10회  (0) 2018.11.14
파생귀 9회  (0) 2018.11.13
파생귀 8회  (0) 2018.11.12
파생귀 7회  (0) 2018.11.11
파생귀 6회  (0) 2017.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