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
1-1. 민구와의 재회
한동안 민구를 잊고 여기저기 작전 정보 얻어 가면서 현물 매매를 했지만 기대만큼 수익은 늘어 나지 않는
시간이 꽤나 흘렀다. 88년 올림픽 즈음 1000을 넘나들던 종합주가지수는 90년대 초에 들어서자 다시
빠지기 시작하여 반 토막이 나고 있었다. 장이 좋지 않을수록 작전 세력은 더욱 날 뛰던 그런 시기였다.
나도 멋진 한탕을 꿈꾸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D증권 영업담당 최철민의 소개로 나는 여의도 독수리 작전 세력과 끈이 닿아 있었다. 은행원이었던
나는 작전세력 사람들의 돈도 은행에 유치하고 대출도 알선하면서 꿩 먹고 알 먹기 작전으로 나가고 있었다.
500만원으로 시작한 계좌가 어느새 5,000만원까지 늘어나 있었고 이제 1억을 목표로 나름 재미있게 지내던
그런 시기였다.
어느 날 여의도 작전 세력의 큰 손님 중 한 명이 나를 통해 예치했던 자금 2억을 인출하여 갔다. 바로 나는
최철민에게 전화했다.
“철민씨.. 유사장 2억 인출 했는데.. 뭐 있지… 좋은 건수…”
“어휴.. 김형.. 후각은 정말 좋네… 주호물산 들어간대요.”
“주호물산? 잠깐.. 현재 3,200원이네.. 어디까지 쏘는 거야~~”
“4배 판 떼기 나온대요. 김형은 두 배만 챙겨요…”
그리고 두 달 후 주호물산은 7,000원까지 올라섰다. 이제 내 계좌는 1억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때 정리
했어야 했다. 2~3일 1억 정도에 머물던 계좌는 일주일 만에 다시 2,000 만원이 빠져버렸다.
짜증나면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선 녀석은 분명 조민구 그 녀석이었다.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인사도 없이 이 녀석은 바로 지점장 실로 직행 해 버렸다.
나는 멍하니 그 녀석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한 20여분이 지나고 지점장실 문이 열렸는데
우리 지점장이 민구 녀석에게 꾸벅꾸벅 90도 인사를 하며 민구 녀석을 배웅한다. 도도한 우리 지점장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민구 녀석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 때서야 민구 녀석 반가운 척을 하며 의례적인
인사를 던지며 은행을 나섰다.
민구 녀석이 떠난 후 나는 지점장으로부터 우리 은행 지점과 민구 녀석의 작전 팀과의 모종의 거래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 모종의 거래는 나와 D 증권 최철민과의 형태와 비슷했지만 규모는 몇 십 배 였다. 지점장은
나이 한참 어린 민구와의 관계가 좀 어색했는지 동창 사이인 나에게 민구 작전 팀과의 업무를 맡으라고
이야기 했고 뭐.. 나야 바라던 바 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미련 없이 주호물산을 정리했다.
며칠 후 드디어 나는 민구와 저녁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만 하는 범생이에
속하는 편이였고 민구는 좋은 머리로 다양한 놀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도 공부도 그리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민구가 들려 준 이야기는 어쩌면 몇 년 후에 벌어질 우리 둘 사이의 악연에 대한 이야기 였는지도
모른다. 지점장과 함께 한 저녁 시간에서는 공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둘만이 함께한 2차 술자리에서 민구가
나에게 이야기 했다.
“나는 네가 은행업무의 일환으로만 증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너야 원래 범생이 스타일이니 은행 업무가 잘
맞을 것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일만 잘 처리 해도 은행에서 바라는 실적 이상을 거둘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네가
개인적으로 정보를 이용한 매매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면 언젠가는 그게 너에게 날카로운 칼날로 돌아올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칼날 내가 너에게 겨눌 수도 있는 거야. 이 바닥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이지 않아. 결국에는 몇 명
살아남지 않는 곳이 이곳이야….”
그 말의 의미는 후에 제대로 맞아 떨어졌지만 당시에는 단조로운 은행업무에서 벗어나 지점장 묵인과 민구의
지원 하에 개인적으로 돈도 벌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은행 생활은 물론이고 민구 녀석 고객의 계좌만 잘 들여다 보아도 내 돈이
늘어나는 그런 날 들이었다. 밤이면 민구 녀석 고객들이 불러내어 증권사 사람들 속에 끼어 강남의 룸살롱을 섭렵하고
다니고 주말이면 골프 치러 다니느라 정신 없었다.
누구에게나 있다던 인생의 정점을 나는 그 때 찍고 있었다.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집안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
친인척의 자금도 맡아 불려주고…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때가 나의 전성기이자 대한민국의 버블 경제의 마지막 단계였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터질게 터졌다. 1997년 말 IMF 경제위기…
첨에는 그게 어쩌면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기회가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발점이었다. 일단 돈이 돌지 않았다. 민구 녀석의 고객들도 돈을 찾아만 가지 돈을 다시 맡기지 않았고
작전빨도 쉽게 먹혀 들지 않기 시작했다. 뭔가 예전하고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예전에 나에게 까지 온 정보가
신뢰성이 상당했던 거에 비해 당시 나에게 까지 들어오는 정보는 곧잘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맞겠지 하고 들이밀다 내 돈은 물론이고 친인척 돈까지 수익이 아닌 손실로 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민구 녀석에게 직전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 동안 크게 욕심을 내지 않았던 나였지만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마음이 급하고 크게 한탕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민구 녀석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며칠이
흘렀지만 민구 녀석은 연락 준다고 하면서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흐른 후 민구 녀석이 데리고 있던
이재학 이라는 친구가 은행으로 찾아왔다. 민구 형님이 바쁘다는 둥 이야기 하면서 그 녀석이 내게 주고 간 메모에는..
“기산실업 목표가 9,800원” 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산 실업… 이제는 증권사 HTS 도 이용 가능했던 시기인지라 차트를 보았다. 현재 3,100원이다. 3배는 나오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1년 정도 HTS 보아 온지라 이제 차트는 좀 볼 줄 아는데 전형적인 작전 초기 형태이다.
종합주가지수가 한달 사이에 반 토막 났는데 기산실업은 오히려 2000원대에서 3000원대로 올라섰고 이제
종합주가지수 반등이 이루어 진다면 제대로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일단 친인척 자금은 놔두고 2억 가까이 된 내 자금을 몽땅 기산실업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일 정도 지나자
기산실업은 4000원대로 진입을 하였고 나는 그제서야 친인척 자금 3억을 더 집어 넣었다.
며칠 후 5000원 가까이 기산실업은 올라서고 나는 민구 녀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자 연락을 취했지만 쉽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따블만 되면 정리하면 되겠지. 앞으로 2 주 후면 6000원대
들어설 테니까… 종합주가 지수도 300대까지 주저 앉았다가 다시 500대 진입을 하고 있었다.
시간만 가라… IMF 때 술 마시러 가면 정말 황제 대접이었다. 그렇게 바글바글 대던 룸살롱 방이 한두 개 밖에
돌지 않았고 예쁜 언니들이 따블도 뛰지 않고 옆에 붙어 앉아 술시중을 들어주었다.
1-1. 몰락의 향기
1998년 2월 어느 날… 역시 술은 겨울에 마셔야 좋아.. 머리는 숙취로 찌끈찌끈 했지만 기분 좋게 은행으로
출근 했다. 그날도 기산 실업은 3% 정도 상승하여 5000원대 지지를 확인하고 있었고 이제는 예전의 업무에서
다시 일상적인 은행 업무를 하고 있었던 지라 따분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 4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고
오늘 저녁은 어디 가서 누구랑 술을 한잔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은행 안이 술렁거렸다.
“에이.. 결국 이리 되는 거였어~~”
여기 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그랬다.. 내가 다니고 있던 은행이 결국 문을 닫고 다른 은행에 인수 합병이
된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말이 인수 합병이지 간판을 그쪽 은행으로 달아야 하니 흡수 합병되는 것이었다.
지점 안의 직원들은 다들 올게 왔구나 하는 식으로 멍한 얼굴 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잘 된 일인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었다. 이제 기산 실업만 잘 해결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은행 업무가 내게 잘 맞는 일도 아닌 것 같고…
가족들의 전화가 핸드폰으로 몇 통화 왔고 그 때 마다 나는 속 마음을 감추고 그 동안 열심히 근무 했으니
무난히 합병되는 은행에서 계속 일하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날 밤도 술 한잔 했던 것 같다.
다음날 어수선한 은행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HTS를 켰다. 오늘은 얼마나 올라 시작할까… 그런데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기산실업은 전일 종가 5,280원 그대로였다. 뭐지…?
‘기산실업 이상급등 조회공시 불응으로 거래정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핸드폰만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민구 녀석은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이재학과의
통화는 이루어졌다.
“재학씨… 기산실업 거래정지인데..”
“형님 별거 아닙니다. 아마 내일이면 정상거래 될 겁니다. 이것도 다 작전입니다. 형님 생각보다 약하시네요”
전화를 끊고 후회했다. 몇 년째 이런 일을 해 왔는데 별거 아닌 일에 흥분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예전과 다르게
모든 것을 걸어 놓은 상태인지라 평상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날 이재학 말 데로 기산실업은 거래가 재개 되었고 이전 보다 몇 배 많은 거래량을 수반 하면서 다시 상승해
주었고 나는 미련 없이 은행에 명예퇴직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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